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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의 탤런트 베스트 50 TV 가이드 198835카테고리 없음 2021. 7. 25. 00:08
나처럼 세기말 광대역 메가패스 윈도98 인터넷 시대부터 온라인 활동을 부지런히 하고 연예인의 신변잡기류에 관심이 있다면 통상 컴퓨터 하드폴더 같은 곳에 작은 자료가 보관 또는 방치돼 있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정리하려고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사용량이 많다 보니 자료를 확보해 놓고 올리지 않은 자료도 많고, 써놓고 수정이 귀찮아 10년 가까이 수정을 기다려 미공개 글도 많다.
카페에만 올리고 블로그에는 접속하지 않은 글도 수두룩하다. 2012년 약 반년 동안 개봉관에서 본 영화는 무조건 A4 한 장 이상 분량으로 리뷰를 썼지만 그 중 수십 편의 리뷰를 지금까지 올리지 못했다. 수정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때의 소감은 카페에도 올라온 적이 없다. 몇 번인가 이런 경험을 겪으면서 한 3년 전부터는 바로 수정해서 올리고 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눠놓은 세 번째 하드에서 발견한 1988년 3월 5일자 TV 가이드 스캔 자료는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스캔한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발견한 것이지만 발견한 지 오래돼 출처를 알 수 없다. 글의 주제 전달성 문제로 불가피하게 개인 자료를 가져와야 할 경우 나중에 복잡하게 얽히고 싶지 않아 출처를 남기지만 이번에 올라오는 1988년 3월 5일자 TV 가이드 3월의 탤런트 베스트 50은 보관한 지 너무 오래돼 출처를 알 수 없다. 사진 저장 날짜가 2008년 10월 1일자로 돼 있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옛날 자료일 것이다.
2008년 10월이라면, 아마 외장하드에 있고, 최종적으로 지금의 컴퓨터로 옮긴 것 같다.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하드상태가 악화될 때까지 갔기 때문에 외장하드로 옮긴 뒤 새로 바꾼 컴퓨터로 각종 자료를 이동시켰다.
이번 TV 가이드 인기투표 결과 자료는 2000년대 초에 확보한 자료로 보인다. 지난 20년간 컴퓨터를 네 번 정도 바꿨지만 프리첼에서 열정을 다해 최재성 팬클럽을 열심히 관리한 게 2001~2002년이었다. 최근 확보한 자료가 하드 수명 문제로 바뀌어야 했던 컴퓨터 하드와 외장 하드를 갈아타고 지금까지 남은 것이다.
재작년 그동안 갖고 있던 최재성 자료 중 쓸 만한 것만 골라 게시물 몇 개로 통합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컴퓨터 하드웨어에 그런 자료가 방치돼 있는지 몰라 빠져 있었다. 자료실 폴더를 보면 올릴 만한 자료들이 몇 개 더 보인다. 많지는 않다. 예전에는 귀했지만 지금은 너무 많아 자료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자료 정리를 하면 쓸모 있는 자료는 더 줄어들 것이다. 남은 자료를 지금부터 하나, 둘씩 차례로 게재해야 한다.
1988년은 아이돌 스타 시절 최재성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때였기 때문에 대표적인 연예주간지였던 TV 가이드 인기투표 탤런트 부문에서 종합 1위에 오를 만했다. 2위 이덕화는 사랑과 야망으로 브라운관 대스타로 자리매김한 때이고, 여성 1위이자 종합 3위 최수지는 사랑의 꽃피는 나무와 대하드라마 토지의 성과로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가 1990년 7월 김천과의 삼각 스캔들을 일으킨 재미교포 사업가와 무책임한 도미행위만 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작품으로의 연기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미국에서의 성급한 결혼과 갑작스러운 이혼을 1년도 안 돼 모두 성사시키면서 인기가 순식간에 추락했다. 이혼 후 연예가 중계에 나와 울부짖으며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고,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재기에 성공한 편이지만 1980년대 화려하게 발휘했던 스타성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미군 소속 군의관과 1997년 재혼해 사실상 배우 생활을 마친 것도 첫 결혼 실패 후 배우로서 어정쩡해진 위치 때문이다. 한 번은 도미하기 전에는 정말 인기가 있었다. 도미라는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배우로서 깊은 은하급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수지는 재혼하면서 남편의 직장 문제로 두 번째 미국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연기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혼 당시 그 시절을 기준으로 주연급 여배우에게는 시한부 판결이나 다름없었던 30대에 TV 일일드라마에서는 여우주연급 아줌마 역으로 굳어졌다.
처음부터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배우도 아니었고 작품 수가 늘었다고 해서 특별히 연기로 발전한 것도 아니어서 결혼과 동시에 배우 경력은 자연스럽게 끊겼다. 2004년 리메이크에 복귀했지만 이 드라마는 시청률 부진, 부족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조기 종영했다. 이 작품을 끝으로 최수지는 더 이상 연기활동에 의욕을 보이지 않고 왕년의 스타로 박제되는 길을 택했다. 화가 활동은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https://blog.naver.com/ohys83 제가 2001년~2002년 프리첼에서 최재성의 팬클럽을 운영하며 모은 자료 중 특별히 엄선할 만하다... blog.naver.com